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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제가 겁냈어요. 진작하는 건데"

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

  내가 태어난 고향집 뒷산엔 도립도서관이 있다. 초등학생인 나는 도서 대여를 위해 그 작은 키로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려 하지만 보호자의 증명을 비롯한 별 시덥잖고 복잡한 절차때문에 포기한다. 결국 대여증은 중학생이 되어서나 만든다. 그 후 집에 책에 각종 책들이 쌓여 있어서 고전문고나 백과사전등 아무 책이나 집어 보며  집에서 책을 읽어 나간다. 허나 십대후반부터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이 무섭게 희생하며 이런 추억은 사치가 된다. 십대후반의 미래에 대한 공포로 인해 강요된 고통은 너무 크고 깊다.

  이 고통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이 주는 돈으로 (미래를 사기위해) 싫은 일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실력을 쌓고 기업을 꾸려서 (현재의 시간을 위해)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것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관련된 실력 쌓는 일이 실제로 나랑 안 맞는다고 느껴 스스로 포기하고 편해져버린다. 대학에 들어와 알아먹지도 못하는 학자들의 말들에 빠져 지내는 걸 즐기려하지만 그마저도 특유의 게으름으로 위인전을 읽다만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그 해 11월 여의도에 있는 공원에 구경 간다. 그 곳에서 누군가의 돈 벌 수 있는 자유 때문에 누군가의 상처받을 수 있는 자유가 함께 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이 느낌은 엄청 강렬해서 내 몸에 깊숙이 오래간다. 심지어 나는 돈 때문에 사람이 상처받는 일을 피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겨지고 (나를 그곳에 인도한 사람들이 추천한) 지식과 '옳은 일'을 배우고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옳은 일'들을 하면서 전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게되고, 이전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지 않는 (또는 전에 했으나 이제는 하지 않는)사람들은 '옳은 일'을 하겠다고한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로 남게 된다.

  한두 해가 지나고 이'옳은 일'들이 게으른 나에게 무척 어려웠고, 어떻게 '옳은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무력하게 만든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옳은 일'을 한다고 하며 살 수 있을까란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의문'을 느끼지 않았을까?" 란 생각에 근거한 이 노력은 나와 비슷한 의문을 했을 것 같은 나보다 2배정도 나이 먹은 몇몇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 내용은 '옳은 일'과 삶.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자신도 타인의 삶도 그르친다."
"당위로 버티던 많은 사람들은 30살 40살이 되어 변절했다."
"이웃이 괴로워하는데 혼자 웃고 떠들며 행복할 수 있는가?"

 머리를 싸맨다.

  다시 초등학생 때처럼 아무 책이나 보기 시작한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아무 음식이나 입속에 집어넣 듯, 눈에 들어오는 아무 책이나 집어서 마구 보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편안하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책 한번 자유로이 여유롭게 보지 않았다. 이렇게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삶 또는 안다고 생각했으나 모르던 무수한 삶들을 보게 된다. 생각보다 삶은 다양하다.

   옳고 훌륭하기 때문에 고통과 헌신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편하고 더 즐겁고 스스로 속이지 않으면서 부끄럽지 않는 '삶'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최대한 빨리 이 말을 꺼낼 수 있었으면 한다.

  "괜히 제가 겁냈어요. 진작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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